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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이야기

자연을 사랑하는 기업! 파타고니아

자기회사 옷을 사지 말라고 광고하는 아웃도어 브랜드 , 의류기업인지 환경보호단체 인지 의문이 많이 생기는 기업 바로 파타고니아 입니다. 오늘은 파타고니아 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파타고니아의 탄생배경

1938년 캐나다 퀘백 에 프랑스계 가정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는데 그의 이름은 이본 쉬나드 이며 , 훗날 파타고니아를 설립한 사람입니다. 그의 가족들은 강인하고 도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덕분에 이본은 걸음을 잘 걷기도 전에 계단을 오르는 등 낚시를 배우는 등 어린시절부터 모험을 즐기며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1946년 , 당시까지 포르투갈 리스본에 살던 중 이본의 가족은 캘리포니아로 이사하게되는데 거기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길가에 굶주린 사람들로 가득한 원주민 움막을 발견한 이본의 어머니는 여행을 위해 챙겨둔 음식을 원주민에게 나누어지게 되는데 이게 바로 그의 첫 자선활동 입니다.
그는 공립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어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며 학교생활에 부적응하며 방황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그에 흥미를 자극 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등반입니다. 지인을 통해 처음으로 위험천만하지만 아주 짜릿한 매력을 느낀 그는 등반에 꼳힌게 됩니다.그러던중 높은 암벽을 오르기 위해서는 중간에 움직이기 위해 갈라진 바위의 틈에 피톤이라는 금속 못이 수백개나 필요하는데 , 그당시 피톤은 연철로 제작해 피톤을 한번박으면 
뽑을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회의를 느껴 그는 스스로 피톤을 제작하게 됩니다. 고물상에가서 모루 , 집게 , 망치를 사서 그는 자신과 지인들이 사용하기위해 재사용이 가능한 피톤을 만들게 되는데 소문이 나서 사람들은 이본의 피톤을 찾게 되었다. 한시간에 1.5개에 피톤을 2개 밖에 만들어서 적은 이윤이 남았지만 겨울에는 피톤을 만들어 팔고 , 나머지 계절은 등반을 즐기며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본격적으로 장비회사를 만들게 되는데 수요가 너무 늘어서 더이상 수작업으로 만들수 없게 됩니다. 그는 계속 장비회사를 키워 더욱 가볍고 단순하며 튼튼하게 만들었으며 우리가 만들어 우리가 사용한다는 모토를 토대로 장비를 생산해 어느새 1970년대쯤 미국에서 가장 큰 등반 장비회사로 성장하게 됩니다. 
등반이 대중화 되고 등반 장비 사용이 늘어나는 만큼 자연을 망가트리는 자연이 훼손된다고 느껴 피톤 사업을 철수 하게 되는데 다행히 바위에 변형을 주지 않고 등반하는 아이템을 만들어 클라이밍 운동을 시작하며 캠페인을 하여 등반 문화를 주도하게 됩니다.이렇게 대장간에서 부터 시작 된 조그만 사업은 현재 전세계 클라이머 들이 가장 신뢰하는 블랙 다이아몬드로 성장한다. 1970년대 이본은 겨울 암벽에 적합하게 될 것 같아 럭비팀이 입는 럭비 셔츠를 입었는데 이를 본 지인들이 튼튼하고 질긴데다 장비에 목이 쓸리지 않는 그 옷을 어디서 구했냐고 물어봐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이윤이 적은 장비 보다 의류를 판매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는 사업을 슬리핑 백 , 양모장갑 , 모자 , 배낭 등 으로 라인을 늘리며 , 어느날 엄청나게 큰 뒷주머니가 있는 반바지를 만들었는데 시행착오 끝에 이 반바지는 엄청난 인기를 끌게되는데
자꾸 의류 라인이 추가가 되자 의류라인만 전문적으로 판매해야한다고 생각해 특정한 장소라기 보다 아득하고 흥미로운 이상향 이라는 "파타고니아" 라는 브랜드를 런칭하게 됩니다. 파타고니아 는 피츠로이 산의 스카이라인을 본따 삐쭉삐쭉한 봉우리와 푸른 바다가 공존하는 오늘날의 로고가 만들어집니다.

 

파타고니아의 탄생 그 후 

파타고니아는 쉬나드 장비회사의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 는 정신을 계승했지만 직접장비를 만들어 파는 장비회사와 달리 모든 제품을 직접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본은 홍콩에 있는 봉제공장과 계약해 매달 8가지 색상의 3천벌 셔츠를 제공받기로 했지만 , 배송도 느리고 품질도 형편이 없어서 잘못된 계약을 하여 회사가 넘어갈 지경까지 됩니다. 당시 파타고니아의 성장은 빨랐지만 이윤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현금의 유동성이 힘들었습니다. 이 일로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이본은 정신을 차리고 사업에 집중하게 되는데 사업을 확장하더라도 즐겁게 일해야 한다라고 사업을 구상하며 기존의 다른사업ㅈ다들의 틀을 깨버리게 됩니다. 서핑하기 좋은 날씨에는 서핑을 해야하며 , 직원들 중 아이가 아플땐 집에서 아이들을 돌볼수 있어야 하며 스키타기 좋은 겨울엔 스키를 타야 한다고 하는 파타고니아만의 창의적 경영은 그에게 큰 만족감을 줄 수 있었습니다.
한편 , 이본은 몇년간 사업에 대한 책을 모조리 일긍며 자신의 사업철학과 맞는 것을 찾았는데 그 결과 우수한 소재를 바탕으로 하는 기능성 의류를 판매하는 것으로 집중해 결정하고 플라스틱 병을 재활용해 , 가볍고 보온성이 뛰어난 리사이클 폴리에시터 신칠라 플리스를 개발하며 , 내구성이 탁월하고 속건성이 우수한 캐필린으로 베이스레이어 라인을 제작하게 됩니다. 1980년대 초 , 당시 아웃도어 브랜드 옷의 색상은 칙칙한 색상밖에 없었는데 파타고니아는 이 편견을 깨고 코발트색, 청록색, 망고색 등 다양한 색상을 도입하게 되는데 자유로운 이미지로 자유분방한 이미지가 더해진 아웃도어 제품인 파타고리아는 시장에서 자리잡게 됩니다. 
1980년대 중반 ~ 1990년대 에 매출이 크게 늘었다. 파타고니아는 패션소비자들에게도 인기를 얻기 시작하며 성장을 해나갔지만 , 무리한 사업 확장과 불황이 겹치며 자금난을 겪으며 경영에 문제가 생기게 되 직원들 20프로를 해고하게 되는데
이본은 십여명의 임원과 바람이 몰아치는 진짜 파타고니아 산에 올라 회의를 하며 제어되지 않은 성장이 회사를 위험에 빠트렸다고 느껴 철학적이고 영감을 주는 지침을 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그것이 바로 지금 나온 철학인데 파타고니아 철학은 "모든 제품은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며 더 강하고, 더 가볍고 , 더 단순하고 , 더 기능적인 제품을 만들어야 된다." 는 신념을 가지고 많이이 파는 것보다 브랜드 이미지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소수의 거래처와 장기적인 동반자 관계를 맺는것이 중요하다고 원칙을 세웠습니다. 빚이 없는 것을 목표로 운영하고 있으며 제품에 대한 열정적인 사람을 채용하며 즐기며 일할수 있는 사람을 채용합니다.
파타고니아는 면생산 방식을 자세히 조사하던 중 목화농사를 위해 미국에서는 매년 31,300톤의 화학물질이 생긴다고 발견하게 되는데 그래서 파타고니아는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목화를 기르는 유기농 목화를 발견하게 되고 비록 더 많은 시간과 지식 , 비용이 더 들었지만 모든 제품을 유기농 목화 제품으로 변경하게 됩니다.
1996년 부터 모든 면제품을 유기농 목화로 만들기 시작하며 일반 목화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데 그러던 중 2011년 중 황당한 캠페인을 발표 '이 재킷을 사지마세요. 필요하지 않다면 말이죠' 라는 역설적에ㅣ게도 이 캠페인은 파타고니아의 열성 고객들을 더 모으게 됩니다.

 

파타고니아의 현재

미국에서는 독특한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는 젊은이들 혹은 대중적인 것이 아닌 '인디' 스러운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힙스터'라 일 컫는데 파타고니아는 '힙스터'들에게 인기를 많이 끌고 있으며 그들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현재는 사무실 에너지 사용률 감소를 위해 노력하며 재활용 소재로 집기류 교체, 환경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한다고 하며 이러한 기업을 우리는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